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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wker에 올라온 Jay Hathaway의 글이다. 게이머게이트에 대해서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은 국내에 게이머게이트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 거의 없지만, 그 몇 안되는 글들이 완전히 바보같은 여성 혐오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글을 번역했다.

오늘 페미니스트 문화 평론가인 Anita Sarkeesian이 유타 주립대학에서 강연을 하려다가 게이머게이터 중 하나가 총기난사 협박을 하는 바람에 결국 강연을 취소하게 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런 류의 여성에 대한 협박은 비상식적인 일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Gamergate

아마 최근까지 당신은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게이머게이트(#Gamergate)에 대해서 모른채 행복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 컴퓨터 업계의 거인인 인텔이 게이머게이트의 로비 때문에 자사의 광고를 독립 게임 개발 사이트에서 내려버린 일이 있었다. 이제 메이저 기업들이 입장을 정하고 있으니, 이게 어떤 것인지 설명할 때가 됐다. 우리가 가이드가 되어주겠다.

#게이머게이트(#Gamergate)는 무엇인가?

“#게이머게이트”는 표면상 게임 저널리즘의 도덕성을 걱정하고, “게이머”의 정체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온라인 운동이다.

“표면상”이라고요?

관대하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게이머게이트는 저널리즘의 도덕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무질서한 군중들의 운동 이상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운동을 관대하게만은 생각할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인텔은 어떻게 이 일에 관여하게 됐나요?

인텔은 지난 주 #게이머게이트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 비디오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니치 웹사이트인 가마수트라에서 자사의 광고를 내려버렸다. #게이머게이트는 저널리스트 Leigh Alexander가 “게이머”에 대해 논의한 을 공격했다. 이 글은 전통적인 의미의 “게이머”가 “화가 난 젊은 남자”와 점차 관련이 없어지면서 의미가 포괄적으로 변하고 있고, 매체들이 새로운 독자들을 포용하려 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록 그 글이 한 달 전에 나오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공격을 했다.

맞다. #게이머게이트는 실제로 8월에 여성 게임 개발자인 Zoe Quinn과 그녀의 성생활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에서 시작됐다.

Quinn은 2013년, 자신의 Depression Quest라는 게임을 공개하려 시도하고 나서부터 살해 위협과 괴롭힘의 희생자가 됐다. 이 게임은 텍스트 기반의 게임이고, 부분적으로 그녀 자신이 우울증을 겪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지난달 뉴요커지는 왜 Quinn과 그녀의 게임이 게이머들을 그렇게 화나게 했는지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 Depression Quest는 “진짜 게임”이 아니고, “단지 단어들의 나열”일 뿐이며, 게임에서 나오는 우울증에 대한 묘사는 너무 개인적이라 공감하기 힘들다는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몇 주 간 게임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살펴보면 단지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왜 그렇게 말하는겁니까?

그녀에 대한 괴롭힘은 8월에 그녀의 전-남자친구인 Eron Gjoni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고점을 찍는다. 그는 블로그에 Quinn이 자신과 사귀면서 다섯명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다섯명 중에는 게임 산업이나 게임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게이머 소셜 미디어 그룹 내에서 음모론이 즉각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Quinn은 다섯 명의 남자와 섹스를 한 것이 틀림없고 (심지어 게이머들은 버거 체인을 빗대어 조롱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자신의 게임 홍보를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얼마 안 있어 Quinn의 집주소와 전화번호가 공개됐고, 그녀에 대한 위협이 점차 커져서 결국 그녀는 자신의 집을 떠나 다른 집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지난 주 뉴욕 타임즈는 여전히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럼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그녀를 공격했고, 그것 때문에 인텔이 가마수트라에서 광고를 내렸다는겁니까?

글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9월에 Quinn에 대한 공격은 4chan, 레딧, 유튜브, 다양한 IRC 채널들을 통해 조직화된 캠페인으로 발전했다. 게이머들은 성생활을 빌미로 여성을 공개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나쁘게 보인다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들은 빠르게 포커스를 게임 저널리즘의 붕괴로 전환했다.

그들은 “다섯 명의 남자” 중 한 명이라고 추정되는 코타쿠의 필자 Nathan Grayson부터 시작했다. Nathan Grayson은 그녀와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Quinn에 대해 긍정적인 글을 써줬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Grayson은 Depression Quest를 리뷰한 적이 없다. 그는 그 게임에 대해 반 문장 정도를 썼을 뿐이고, 그마저도 Quinn과 사귀기 전에 썼다. 그게 전부다. Quinn과 Grayson을 비난하는 이들도 코타쿠에 올라온 글에 대해서 이 부분을 지적한다 – 그 글은 그들이 데이트를 하기 전에 쓰여졌다.

코타쿠를 비롯한 수많은 뉴스 소스들이 그런 리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게이머들은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이 글을 저널리즘 붕괴의 한 예라며 웃음거리로 삼는다.

(Kotaku와 Gawker는 자매 사이트다. 둘 다 Gawker Media LLC의 소유다.)

게임 커뮤니티가 전부 여성혐오자들과 성난 멍청이들로 이루어진건 아닐텐데요?

8월 말 경에는 상당한 수의 게임 언론들이 자신들 스스로가 Quinn에게 위협을 가하는 부류의 게이머들에 의해 수익을 얻는다고 얘기했다. 여기에는 페미니스트 비판가, Anita Sarkeesian 같은 게임계에서 저명한 이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너무나 많은 혐오가 있다. 너무나 많은 욕설과 너무나 많은 비난이 있다. 이것들은 무엇에 대한 욕설과 비난인가? 비디오 게임인가? 비디오 게임계에 있는 여성들인가? 아니면 비디오 게임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인가? 사람들이 안전 문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 밖을 나서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부적절한 일이다.” 코타쿠의 필자인 Luke Plunkett의 글이다.

몇몇 사이트들은 게임 커뮤니티의 인구 분포 변화에 대한 글을 썼다: “게이머”라는 단어의 죽음에 대한 글이었다. “게이머의 종말(The End of Gamers)”, “게이머는 끝났다(Gamers’ Are Over)”, “우리는 정체성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른다(We Might Be Witnessing the Death of an Identity).” 같은 헤드라인들이 게임 뉴스 사이트에 나타났다.

그게 #게이머게이트라는 해쉬태그와 이름이 나오게 된 이유입니까?

맞다: #게이머게이트 운동은 “게이머”라는 단어를 광범위하게 거부하고 게이머게이트가 가지고 있는 비열한 여성혐오의 일면을 거부하는 글들에 대한 응답으로 만들어졌다 – 보수적인 Firefly의 배우인 Adam Baldwin이 만든 해쉬태그에서 빌려온 것이다.

당신은 #게이머게이트 참여자들이 스스로 비디오 게임 저널리즘의 도덕성을 두고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맞다. #게이머게이트 참여자들은 게임 저널리즘이 붕괴됐다고 믿는다 – 너무 많은 필자들이 게임 개발자들과 우정을 다지고, 가까운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사람이 Zoe Quinn 같은 개발자 – 독립 개발자에 크라우드 펀딩을 받고, 주로 소수자 그룹에 속한 사람 – 라는 것에 신경을 쓰지 말아라. #게이머게이트의 (어쨌든 공개적인) 사명은 게임 필자들에게 “진짜 저널리스트”들과 동일한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한번도 그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게이머게이트가 실제로 한번도 도덕성에 대해 얘기하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몇몇 진지한 참여자들이 그 논의를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섯 남자 스캔들” 이후에 나온 채팅 기록을 보면 이 운동이 우선적으로 Zoe Quinn을 파멸시키는데 집중하고 있고, 게임 보도를 개선하는건 두번째로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양한 4chan 메시지 게시판의 공모자들은 Quinn의 음부 모양과 냄새에 대해 얘기하고, 누출시킨 그녀의 누드 사진으로 무엇을 할지 얘기하면서, 동시에 “나는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는 신경 안 써. 그냥 Zoe가 응당 받아야 하는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화를 보자:

“나는 그저 그 여자의 인생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욕설] 끔찍해지기를 원해.”

“하지만 그러다가 그녀가 자살하면 어쩌지…”

“그거 괜찮네.”

결국 그들 중 (아주 조금) 더 똑똑한 사람들이 우세해졌고, #게이머게이트를 만든 트롤들은 그들의 목표를 Zoe Quinn을 망가뜨리는 것에서 표면상 저널리즘의 도덕성에 대한 것으로 옮겼다.

“그녀를 직접적으로 더 많이 공격할수록, 그녀는 더욱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려 할거고, 그녀가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since she has a vagina) 그녀를 지지하는 친구들은 이 운동을 [욕설] 여성혐오로만 몰고 갈거야.” 그들 중 하나의 생각이다.

그럼 도덕성에 대한 불평은 그저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미끼라는 건가요?

많은 #게이머게이트 참여자들은 진지하게 자신들이 게임 저널리즘의 붕괴에 대항해 중요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외부의 관찰자들이 볼 때, 그들이 게임 사이트에 광고를 하면서 많은 수익을 내는 커다란 게임 기업들 대신, 작고 독립적인 크라우드 펀딩을 받는 개발자들을 거대한 위협으로 규정한다는건 이상한 일이다.

“게이머의 죽음” 같은 것들은 무슨 얘긴가요?

#게이머게이트가 신경쓰고 있는게 도덕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움직임이 궤변론자(Ad hominem)들의 공격에서 오로지 Quinn만 비나하려 하는 것으로 변하면서 족벌주의와 게임 산업 붕괴의 한 예가 됐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불평을 정당하게 만들기 위해 사회 정의와 저널리즘의 언어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들의 운동이 여성들을 특정지어 목표로 삼고 있지만, #게이머게이터들은 그들 스스로가 피해를 받은 “인구 분포”를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게이머를 일반화시키면서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위선자가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광고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은 “게이머”를 죽었다고 하거나, 시대에 뒤쳐진 정체성이라고 얘기하는 모든 글들이 기업의 이익과 상반된다고 말한다.

좀 엉망처럼 들리는걸요.

게이머게이터들은 사업계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7천만명의 강력한 시장 압력으로 보여지길 원하면서, 동시에 핍박받는 소수로 받아들여지길 요구한다. 그들은 게임 사이트들이 과감하게 대부분의 화난 게이머들은 젊은 백인 남성이라고 지적할 때, 그들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하고 있다고 광고주들에게 경고했다. 동시에 그들은 화난 젊은 백인 남성들이 그 게임 사이트들의 “대상 독자”들이라고 말하고, 필자들이 스스로 위험을 짊어지고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Leigh Alexander 글 링크를 #게이머게이트 참여자들이 광고주들에게 보내는 스팸에 함께 끼워넣는다는 것이다. 그 글은 틀에 박힌 의미의 게이머가 더 이상 이 산업의 유일한 독자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게이머게이트가 사납게 저항하는 사실이 있다. 게임이 “목표로 삼는 인구 분포” 밖에 위치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사실 알고보면 이는 광고주들이 아주 좋아할만한 얘기다: 잠재적인 새로운 고객들이란 얘기 아닌가.

#게이머게이트는 모두 백인 남자만 있나요?

아니다: 몇몇 여성과 유색 인종들도 다양한 정도로 이 운동이 목표로 하는 몇가지 요소들을 지지한다.

하지만 가장 열렬히 참여하는 지지자들은 굉장히 절실하게 (그게 말이 된다는 듯이) 자신들이 억압받는 다수를 대표한다는 환상을 지속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량의 허수 계정들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이 운동의 크기를 부풀리고, 심지어 모든 여자가 게임계에서 여성의 주장을 신경쓰는 것은 아니라고(#notallwoman) 말하기 위해 Vivian James라는 여성 만화 마스코트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게 성공하고 있나요?

비록 게이머게이트의 입장이 모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까스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일부 얻을 수 있었다. 게임을 만들고 게임에 대한 글을 쓰는 저명한 여성이 산업에서 쫓겨났다. 코타쿠는 필자들이 Patreon의 개발자들에게 펀딩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 Patreon은 게임계의 여성들에게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이트다 – 특히 여기엔 게이머게이트의 타겟인 Zoe Quinn과 Anita Sarkeesian이 있다 (코타쿠의 편집장인 Stephen Totilo는 후일 그 정책이 개발자에 대한 어떠한 금전적인 지원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확실히 했다).

그리고 최근엔 인텔이 엮인 대소동이 있었다.

인텔은 자신들이 엄청난 여성혐오와 무지의 편을 들고 있다는걸 몰랐던 건가요?

글쎄다 – 게이머게이터들이 인텔의 결정을 자신들의 편지 – “작전명 무례한 끄덕임 (Operation Disrespectful Nod)”라는 캠페인이었다 – 로 인한 승리라고 자축한 후, 인텔은 게이머들 – 그리고 페이크 게이머들 – 이 자신들로 하여금 여성 혐오 운동을 지지하도록 속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점차 커져가는 쓰라린 논쟁의 한쪽 편을 부적절하게 들었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우리의 의도가 아닙니다 … 인텔은 여성을 차별하는 그 어떤 조직이나 운동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사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공격했다면, 이 또한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인텔의 성명이다.

하지만 광고를 내리겠다는 그 결정으로 어쨌든 게이머게이트에 도움을 주고 말았다.

한편 실제 게임 저널리즘의 도덕성 문제 – 예를 들자면 기업의 영향 – 는 검토되지 않은채 남아있다.

그 이유는 #게이머게이트의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이 게임 저널리즘을 개선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설명은 이런 식이다: 그들은 그 게임이 여성과 소수자들을 어떻게 묘사하는가와 같은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단지 게임을 하길 원할 뿐”이다. 혹은 게임 산업이 여성과 소수자 그룹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들은 그런 논의를 하는건 괜찮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들에게 불편한 이슈와 마주하라고 그 논의를 강요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그 문제를 떠맡기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인식을 하고 있든 아니든, 그들은 처음으로 실제 “특권”의 개념과 마주치게 됐다. 매우 긴 시간 동안 “대상 인구”에 속한다는 것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그리고 많은 경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만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다른 관점에서 그 게임들에 의문을 던지는 것에 신경쓰지 않은채 말이다.

Anita Sarkeesian의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에서의 여성” 같은 프로젝트는 그러한 신랄한 비평들을 고무시켰다. 왜냐하면 그 프로젝트들이 특권의 거품에 구멍을 내고, 게이머들이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대화들을 시작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그들에겐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특히 스스로를 전통적으로 (백인, 남성의) 사회적 서열에서 바닥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게이머게이트의 혐오스러운 행동과 솔직하지 못한 사명은 비록 이것이 몇몇 진짜 소시오패스들의 피난처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주 어린 남자 – 많은 경우 아이들이다 – 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잊게 만든다. Leigh Alexander가 지적했듯이, 게임에 대한 담화들은 이러한 논의들을 이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게 해줬다. 왜냐하면 “과거에 [게임 산업]이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그게 #게이머게이트가 피해를 준 일들의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망은 준다. 지금 화가 난 젊은 남자들도 언젠간 어른이 될 것이고, 커가면서 그들 이외의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게임 세계를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