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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 페이퍼

Disclaimer: 이 리뷰는 리디북스에서 기기를 임대 받아 쓴 것입니다.

내가 전자책을 읽기 시작한지 벌써 4년이나 됐다. 전자책을 읽을 때 내 모습은 이렇다. 먼저 아이패드를 들고, 앱을 켠다. 그리고 몇 분 정도 책을 읽는다. 알림이 뜬다. 트위터를 잠깐… 아니 조금 오래 하고,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글이 없는지 확인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1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책을 읽다가, 다시 새로운 알림을 확인한다.

리디북스 페이퍼를 처음 써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런 독서를 방해 하는 것들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페이퍼를 집어들고, 좋아하는 책을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는다. 처음엔 아이패드가 이미 있었기에, 굳이 전자책을 보는 기기가 또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전자책을 읽을 수 있어도 아이패드가 있으면 책 읽기가 더 좋은 것처럼, 아이패드가 있어도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있으면 독서라는 경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지난 2년간 국내에선 이렇다 할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나오지 않았다. 해외에서 매년 아마존 킨들이 리프레쉬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난 10월 5일, 리디북스에서 전용 단말기인 리디북스 페이퍼와 리디북스 페이퍼 라이트를 출시했다. 두 기기의 차이는 화면 해상도 — 페이퍼: 300ppi, 페이퍼 라이트: 212ppi — 뿐인데, 내가 써 본건 좀 더 높은 해상도를 가진 페이퍼다.

가독성

Ridibooks Paper, by Jiman Yoon

300ppi의 높은 해상도를 갖는 e-ink 디스플레이는 가독성 면에서 최고다. 픽셀을 확인하긴 힘들고, 종이책과 비교해도 그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글씨가 디스플레이 아래의 어디쯤에 있는게 아니라, 거의 화면에 딱 붙어있다고 느껴진다.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에 익숙해진 나같은 사람들한테는 꽤 인상적이다. 화면의 앞 쪽에서 빛을 비춰주는 프론트라이트 덕분에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내 경우엔 태양광 아래에서 책을 읽을 때가 아니라면, 언제나 약간의 라이트를 켜두는게 책을 읽기 더 좋았다 (물론 빛의 세기는 쉽게 조절할 수 있다.[1])

e-ink 디스플레이의 어쩔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는 주기적으로 화면을 리프레쉬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디스플레이 특성 상 잔상이 남게 되는데, 이렇게 남은 잔상은 가독성을 해친다. 그래서 잔상을 없애기 위해 리프레쉬를 해줘야 한다[2]. 페이퍼의 경우엔 페이지를 몇 번 넘긴 후 리프레쉬를 할지 설정할 수 있다 — 1페이지마다, 5페이지마다(기본값), 10페이지마다, 리프레쉬 안하기의 옵션이 있다[3]. 화면 리프레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리프레쉬가 읽기 경험을 방해한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Ridibooks Paper Comics, by Jiman Yoon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훌륭하긴 하지만 완벽한건 아니다. 6인치의 작은 화면 크기 — 9.7인치 아이패드의 절반도 안되는 크기다 — 는 종종 가독성을 떨어뜨린다[4]. 특히 페이퍼로 만화책을 읽고자 하면 그 부분을 크게 느낄 수 있다. 페이퍼로도 분명 만화책을 나름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페이퍼에서 만화책을 읽는게 최고의 경험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특히 대사가 많은 만화책이 그렇다. 만화책에서는 서체 크기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대사를 읽을 때 편하지 않다. 만화책만의 특징이지만, 두 페이지를 이어붙여 그려진 컷을 페이퍼에서 완전하게 볼 수 없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나라면 만화책은 아이패드로 보겠다.

만화책이 아닌 책을 읽을 때도 서체의 설정에 따라 가독성이 크게 달라진다. 페이퍼는 총 4개의 기본 서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 중 굵은 서체(Bold)들은 훌륭한 가독성을 보여주지만, 다른 서체들은 실외에서 화면을 다소 멀리 두고 볼 때면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용자가 원하는 서체를 임의로 추가할 수도 있지만, 기본값이 최고의 설정이 아니라는건 아쉬운 부분이다.

속도 및 배터리 사용 시간

안드로이드 기반의 펌웨어가 1.0 버전인걸 생각하면 최적화가 잘 되어 있다. 책이 뜨는 속도도 그리 느리지 않고, 서체 설정을 바꿨을 때 책이 다시 렌더링 되는 속도도 빠른 편이다. e-ink 디스플레이의 반응 속도 때문에 터치 입력 후 화면 전환까지의 시간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기기의 속도가 책을 읽는데 불편함을 주지는 않는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경쟁 기기인 크레마 카르타와 비교해둔 영상을 볼 수 있는데, 페이퍼가 크레마보다 실사용에서 좀 더 빠르다는걸 알 수 있다.

배터리 사용 시간의 경우 리디북스에 따르면, “하루 한두시간 독서로 일주일 이상 사용가능” 하다고 한다. 단, 와이파이와 프론트라이트는 꺼 둔 상태가 기준이다. 내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배터리 사용 시간을 측정해 본 건 아니지만, 저 말이 크게 과장됐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처음 페이퍼를 받고 완충 후 3일을 사용했는데, 그 동안 배터리를 절반도 채 쓰지 못했다.

하드웨어

페이퍼의 가격은 꽤 저렴한 편이다 — 라이트 모델은 89,000원이고, 페이퍼는 149,000원인데, 쿠폰을 적용하면 좀 더 저렴해진다. 괜히 사람들 사이에서 가성비 얘기가 나오는게 아니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제품들을 구입할 때면, 하드웨어의 만듦새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다행히 페이퍼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불만을 갖지 않을 정도의 만듦새를 보여준다.

내장 메모리로는 8GB의 용량을 제공한다. 8GB면 대략 10MB짜리 전자책을 800권 정도 넣을 수 있는 용량이다. 물론 OS를 비롯해 기본적으로 차지하는 용량을 제외하면 그보다 적은 수의 책을 넣게 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용량이 큰 만화책만 넣는게 아니라면) 이 정도면 충분한 수준이다. 게다가 (만화책을 주로 넣는 사람들을 위해서) 외장 메모리를 이용해 최대 32GB의 용량을 추가적으로 쓸 수도 있다.

페이퍼의 하드웨어적인 특징 중 하나는 페이지 넘김 버튼을 물리 버튼으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e-ink를 쓰는 제품들이 다 그렇듯, 화면의 반응성 때문에 결코 터치감이 좋다고는 하기 힘들다. 하지만 페이퍼는 페이지 넘김 버튼이 있어 전자책 독서 경험을 상당히 좋게 만들어준다. 특히 이 버튼들이 눌리는 느낌이 좋다. 눌리는 소리가 크지 않아 조용한 곳에서도 버튼을 쓸 수 있고, 적당한 힘을 가해줘야 눌리기 때문에 실수로 페이지를 넘기는걸 방지한다. 그렇다고 페이지 넘기는게 힘들 정도로 세게 눌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딱 적당하다.

하지만 디테일 속에는 악마 또한 숨어 있다. 내가 받은 리뷰 기기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페이지 넘김 버튼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버튼이 고정된게 아니라 어딘가에 걸쳐 있다는 느낌이다. 또한 왼쪽과 오른쪽 버튼 사이에 단차가 있다. 왼쪽 버튼은 베젤과 높이 차이가 없지만, 우측 버튼은 베젤보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마감이 아쉽다[5].

소프트웨어

리디북스의 소프트웨어 역량은 국내 전자책 업체 중에서는 최고다. 내가 전자책 서비스로 리디북스를 선택한 이유는 책이 많아서가 아니라, 전자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 유일하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앱을 리디북스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페이퍼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도 그렇다. 페이퍼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페이퍼에선 안드로이드용 리디북스 앱에서 쓰는 기능을 거의 대부분 쓸 수 있다. 따라서 기존에 다른 기기를 이용해 리디북스를 쓰던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쉽게 페이퍼에 적응할 수 있다.

책을 읽다가 우상단을 터치하면 책갈피가 표시되고, 좋아하는 문구를 탭하고 있으면 하이라이트를 할 수 있다[6]. 하이라이트된 문구에 독서 노트를 쓸 수 있다는 점도 같다. (단, 안타깝게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의 공유 기능은 삭제됐다.) 이렇게 페이퍼에서 표시한 것들은 다른 기기에서도 똑같이 동기화된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던 지점까지 동기화되기 때문에, 페이퍼에서 책을 읽다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 이어서 읽기도 좋다.

글자 크기는 총 12단계로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고, 앞서 말했듯 원하는 폰트를 직접 기기에 넣어 선택할 수 있다. 줄간격은 3단계로, 여백은 2단계로 조절 가능하다. 사전 기능도 내장되어 있다. 영영 사전, 영한 사전, 국어 사전, 그리고 위키피디아를 제공하는데, 이 중에서 와이파이 연결 없이 사용할 수 있는건 영영 사전 뿐이다. 이 기기를 쓸 사람들의 99% 이상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영영 사전만 자체 내장된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한과 국어 사전은 네이버 사전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디북스에서 구입한 책을 제외하고도 epub, pdf, txt 파일을 추가해서 볼 수 있다. 향후 zip 파일까지 지원한다고 하니, 종이책을 스캔해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고마운 일이다. 파일 전송은 USB를 이용한다. 이 부분은 다소 아쉬운데, 와이파이가 가능한 기기를 두고 파일 추가를 USB로만 할 수 있다는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브라우저를 이용하거나, 드롭박스나 구글 드라이브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한 방법이 추가되길 바란다.

페이퍼의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리디북스 앱과 거의 똑같기 때문에 익숙함이라는 장점을 갖지만, 동시에 기기가 달라졌기 때문에 같은 소프트웨어를 쓴다는건 단점 또한 만들어낸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e-ink 화면에선 스크롤이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이다. 스크롤링의 속도를 화면의 반응속도가 따라오지 못하고, 계속해서 화면을 리프레쉬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용자는 스크롤을 기피하게 된다. 스크롤을 해야만 하는 UI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스크롤을 하게 되지만, 페이지네이션과 스크롤이 동시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페이지네이션을 선택하게 된다. 페이퍼에선 구매 목록 UI가 거기에 해당된다. 각 페이지마다 스크롤 할 수 있는 UI가 있는데, 사용자는 무의식적으로 페이지 넘김을 쓰게 된다. 그러다보니 스크롤을 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들고, 구매해놓은 책을 찾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 내가 그랬다.

구매 목록에서는 페이지 넘김 버튼을 쓸 수도 있다. 목록의 페이지를 넘기는 용도로 말이다. 한편, 기기 설정에서 페이지 넘김 버튼은 스크롤 이동의 역할을 한다. 이런 일관적이지 못한 경험은 페이퍼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를 충분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페이퍼에 없는 기능들도 있다. 먼저 브라우저가 없다. 인터넷을 못하게 한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로 브라우저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스타벅스에서 와이파이 연결을 할 때가 그렇다. 하지만 페이퍼는 브라우저가 없으니 브라우저 인증이 필요한 와이파이는 접속할 수 없다. 와이파이 연결이 필수적인 기기가 아니니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지만, 제한적으로라도 인증할 수 있는 방법은 있으면 좋을듯 싶다.

서점 기능도 없다. 따라서 현재는 페이퍼를 리더기로만 사용해야 한다. 다행히 이 부분은 리디북스에서 향후 업데이트 해줄 예정이라고 공지했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총평

사용자 입장에서 국내 전자책 리더기를 구입하려 하면 크게 2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리디북스가 있고, 다른 하나는 크레마다. 크레마는 예스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리브로 등의 연합 서점을 활용할 수 있어 리디북스에 비해 컨텐츠 면에서 양적인 우위를 점한다. 또한 열린 서점 — 타사 앱을 설치할 수 있는 기능 — 을 지원하기 때문에, 리디북스 앱을 설치해서 쓸 수도 있다. 반면 리디북스는 열린 서점을 지원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범용성 면에서 리디북스는 크레마보다 못하다.

재밌는건 컨텐츠의 양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이들이 리디북스를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물론 양적인 차이가 그리 눈에 띄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리디북스의 쾌적한 사용자 경험과 간편한 결제 과정, 친절한 고객 서비스,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같은 것들이 한국이퍼브 연합서점에 비해 리디북스를 더 선호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나는 전자책 리더기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자책 리더기를 거칠게 표현하면, ’독서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잘 달성하기 위한 기기’라 할 수 있다. 비록 1.0 버전임에도 리디북스 페이퍼는 그 부분을 잘 충족시키고 있다. 그리고 나는 리디북스가 앞으로도 업데이트를 통해 페이퍼를 계속해서 개선해 나갈거라고 믿는다.

그 외…

  • 해상도가 낮은 페이퍼 라이트도 충분히 좋다. 페이퍼를 옆에 두고 비교해야 해상도 차이를 알아챌 정도였고, 실사용에 있어서는 만화책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조금 낮은 해상도가 독서 경험을 크게 방해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기본 구성품에 어댑터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을 가지고 있어도 구매할만하다. 다시 말하지만 e-ink와 페이퍼의 제한적인 기능은 독서에 훨씬 더 많이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1. 빛의 세기는 책 읽는 화면에서 손가락을 아래위로 스와이프하면 조절 할 수 있다. 다만 만화책의 경우 이 제스쳐가 먹히지 않고 메뉴를 통해서 조절해야만 하는데, 만화책이라고 이 제스쳐를 쓰지 못할 이유가 없기에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

  2. 페이퍼의 경우 리갈 웨이브폼이라는 기술이 적용되어 잔상을 억제해준다.  ↩

  3. 만화책은 매 페이지마다 리프레쉬를 한다. 그림은 좀 더 잔상이 남기 쉽고, 글에 비해 그림은 잔상과 겹치기 더 쉽기 때문인듯 싶다.  ↩

  4. 가독성에 대한 얘기다. 휴대성을 감안했을 때, 6인치는 적당한 크기라고 본다. 이 경우엔 휴대성과 약간의 가독성을 어쩔 수 없이 타협했을 뿐이다.  ↩

  5. 일부 제품에서 상판 들뜸 현상이 일어난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받은 기기는 그런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마감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

  6. 하이라이트를 할 때 정확한 지점을 탭하는게 생각보다 어렵다. 아마 아이폰의 터치 지점 보정에 익숙해진 내 탓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의도했던 곳보다 조금 아래 부분이 터치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