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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에 올라온 위근우 기자의 글이다.

에이나르, 아니 릴리는 수술을 통해 여성으로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신의 실수를 돌려놓은 것”이라고 답한다. 적어도 영화 속의 그는 제3의 성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여자가 되길 원했다. 그렇다면 그를 새로운 정체성으로 옹호해야 옳은가, 기존 관념 안에서의 여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더 온전한 주체로 대하는 방식인가. 성소수자를 혐오하지 않는 것만으로 이 이슈에 대해 깨어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대니쉬 걸》을 보며 성 정치학에 대한 나의 무지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트랜스섹슈얼의 기본적 인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그들만이 가진 구체적 욕망이 무엇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이것은 차라리 배움에 가까운 경험이다.

[…] 어떤 배움은 순조롭게 자신이 발 디딘 해석의 지평을 좀 더 단단히 다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또 어떤 배움은 발밑의 지평을 무너뜨리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내게 《대니쉬 걸》과 《캐롤》을 본다는 것은 후자의 의미다. 이 두 텍스트를 통해 만난 낯선 삶의 풍경은 내가 대상에 투영하던 보편타당함이 헤테로 남성의 질서 위에서의 보편성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일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