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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가 약속하는 세상

디즈니의 공주들은 조금씩 변해가는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인어공주》(1987)의 아리엘은 비록 왕자를 필요로 했지만, 아리엘의 빨간 머리와 조개 비키니는 반항과 호기심을 상징했다. 《미녀와 야수》(1992)의 각본가는 벨을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했었고, 《알라딘》(1992)의 자스민은 술탄인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배우자를 찾고자 한다. 《포카혼타스》(1995)는 마지막 장면에서 결혼하지 않고, 《뮬란》(1998)은 성애화되지 않은 채 그려지고, 갑옷을 입는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에서 메리다는 아빠 대신 엄마와 결혼을 두고 갈등을 겪고, 결국엔 모든 남자를 거부한다. 《겨울왕국》(2013)의 엘사는 심지어 여왕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아나》(2016)까지 왔다. 모아나는 똑똑하고, 의지가 강하며, 비현실적인 몸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성애화되지도 않았다. 자신의 섬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남성 캐릭터인 마우이와 모험을 함께 하지만, 영화의 단 한 장면도 로맨스를 위해 낭비되지 않는다. 버즈피드에 나온 설명을 그대로 옮기자면, 모아나는 “벨의 지성과 야망, 뮬란과 메리다의 현실적인 몸, 포카혼타스의 공동체에 대한 헌신, 메리다와 겨울왕국에 나오는 로맨스에 대한 거부”를 모두 합쳐놓은 캐릭터다. 모아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할 뿐, 거기에는 그 어떤 것도 끼어들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순간이 있었다. 작품 자체가 대단히 재밌고 훌륭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요즘의 아이들은 이런 것을 보고 자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다. 그건 어쩐지 감동적인 느낌이 든다. 내가 살아온 세상과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많이 달라지겠구나라고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어떤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모아나가 겪는 역경 중에 여자라서 겪는 역경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아나는 차기 족장이지만, 모아나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승계권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영화를 보는 나는 끊임없이 모아나라는 여성 주인공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감동하지만, 영화는 전혀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그게 마치 당연한 일인듯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즉, 모아나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은 공주조차도 거부한다. 모아나는 그냥 모아나일 뿐이다.

나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을 보며 자란 세대다. 그래서 어쩌면 내 세대의 한계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이 보여주는 세상에 맞춰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아나》가 보여주는 세상은 《미녀와 야수》나 《알라딘》보다 훨씬 멋지고 아름답다. 이런 작품을 보며 커간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일 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아! 내가 모아나가 백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