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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의 등신대를 앞세워 브랜드를 광고하던 SKT가 요즘엔 또다른 젊은 여성의 전신 사진을 대리점마다 붙여놓고 광고를 하고 있다. 도대체 통신사와 젊고 아름다운 여성 모델 사이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SKT는 소비자들에게 그게 먹힌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젊은 여성 모델을 쓰는 것일테다 (SKT가 인지도를 높인 게 자사의 브랜드인지 설현인지는 논외로 하자). 또다른 예로는 LG전자의 신제품 보도 사진이 있다. 신제품을 보라는 건지, 아니면 모델을 보라는 건지 알 수 없는 LG의 보도 사진에는 늘 늘씬한 여성 모델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금융사의 새로운 상품 소개부터 주류 광고까지, 많은 광고가 섹스를 팔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

이렇듯 여태까지 광고에서 섹스를 파는 것은 성공의 방정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섹스가 “아직도” 성공적인 광고 효과를 보장할까? 그렇지 않다. 링크한 가디언의 기사는 이제 섹스가 아닌, 액티비즘이 팔린다고 주장한다. 예로 들만한 것은 많다. 트럼프의 무슬림 밴에서 반사 이익을 얻으려 했던 우버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1백만 달러를 기부한 리프트가 있고, 분노한 시민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1만명의 난민을 고용하겠다고 약속한 스타벅스도 있다.

올해 슈퍼볼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광고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코카 콜라는 《America the Beautiful》이라는 노래를 여러가지 언어로 부르는 광고를 선보였고, 버드와이저는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한 이민자인 자사의 창업자 이야기를 광고로 보여줬다. 섹스를 팔아먹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동차 광고도 이제는 액티비즘을 판다. 아우디는 “딸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요?”라고 질문하는 훌륭한 광고를 만들었고, 마지막엔 아우디가 성별에 관계 없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소비자들은 이제 섹스를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좋은 일을 한다고 믿는 브랜드를 찾는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브랜드를 찾는 것은 그다지 수고스러운 일도 아니다. 어떤 ’운동’을 하기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할 필요도 없다. 다른 커피 브랜드 대신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건, 별다른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스타벅스에 가는 것만으로도 난 간접적으로 난민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자기 만족을 얻는다. 기사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의 액티비즘은 현재 브랜드에 의해서 중개된다”.

물론 기업들의 이런 변화를 순진하게 마냥 반기기만 해서는 안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들 브랜드가 액티비즘을 팔아먹는 것은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팔리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결코 이 기업들이 근본부터 선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기업들은,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돈을 쓸 때만, 선한 일을 한다. 단적으로 리얼 뷰티 캠페인으로 평범한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웠던 도브의 모회사인 유니레버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나올 법한 여성들을 광고 모델로 삼는 액스라는 데오드란트 브랜드도 가지고 있다. 어떤 브랜드가 액티비즘을 팔아먹는 동기가 선한 의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브랜드들의 동기를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나처럼 스타벅스에 가면서 자기만족을 얻는 소비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물까지 폄하할 필요도 없다. 액티비즘을 브랜드가 팔아먹는다고 해도, 그건 여전히 액티비즘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약간의 거리감과 약간의 적극성을 갖고 브랜드의 광고를 옳은 방향으로 변화시켜가는 것이다. 언젠가 SKT 대리점에서 여성 모델의 사진이 없어지고, LG가 보도 사진을 제대로 찍는 그 날까지.


+) 사족이지만, 나는 광고에서 액티비즘을 팔아먹기 시작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이 가장 세련된 형태(aka 광고)로 표현된다는 게 정말 좋다. 정치적 올바름이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쿨한 것으로 소비된다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