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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팬덤과 비판적 지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대중의 지지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정치인에게 팬덤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게 대통령 정도 되는 정치인이라면 팬덤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과 팬덤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돌의 팬덤과 달리, 정치인은 전폭적인 지지보다 비판적인 지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처럼 권력의 정점에 선 정치인에겐 특히 그렇다. 어떤 정치인의 지지자란 그 정치인을 가장 엄정하게 비판하고 감시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을 선택했다.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바라는 사회를 만드는 데 그가 가장 적임자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사실상의 대선일 것 같아 신청했던) 민주당 경선에서도 문재인을 찍었으니, 이 정도면 누군가 나에게 문빠라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의 팬덤이기보다는 지지자로만 남고 싶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거부감이 생각난다. 난 하고 싶은대로 다 하라고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아니라, 문재인이 하고 싶은 걸 다 하지 않을 걸 알기에 표를 줬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보지 않았나.

정치인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세상이 오는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미친듯한 속도로 백스텝을 밟았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세상이란 먼 곳 어딘가에 있는 결승선 같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과정의 문제랄까. 결승선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을 비판하고, 비판에 정치인이 응답하는 것 또한 그동안 간절히 바라던 세상이 아니었던가.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속도가 조금 느린 건 괜찮다. 그 느린 속도마저도 결국 내가 원했던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