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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추남들

《에스콰이어》 2018년 1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2017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은 “침묵을 깬 이들”이다. “침묵을 깬 이들”은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 속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성폭력 피해를 용감하게 말한 여성들 모두를 칭한다. 타임지는 2017년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고 봤다. “침묵을 깬 이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MeToo 해시태그를 만들어 하나의 운동을 끌어냈다. #MeToo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여성혐오적 언행들을 표면화시켰다. 시작은 할리우드의 거물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틴이 과거부터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뉴욕 타임스와 뉴요커의 보도에서 촉발됐다. 그 이후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성폭력과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제보들이 있었고, 미국의 언론은 그 제보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기사로 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42명의 남성이 성폭력과 성추행 때문에 해고당하거나, 사표를 썼고, 24명이 정직을 당하거나 직장 내에서 처벌을 받았다. 10월 5일, 와인스틴의 보도 이후 2달 동안 66명의 유명 남성들이 성추행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대가를 치렀으니 타임지의 선정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2달간의 연이은 제보와 보도는, 성추행을 일삼는 여성혐오적인 이들에게 더는 당신이 설 자리는 없다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전한다. 일회성 보도에 끝나지 않고, 이렇듯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침묵을 깬 이들”과 언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언론까지도 “침묵을 깬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비 와인스틴의 사안을 보자. 처음 와인스틴을 기사화했던 뉴요커의 로난 패로우 기자는 11월의 후속 보도에서 와인스틴이 어떻게 자신에 대한 보도를 막았는지에 관해 썼다. 와인스틴은 모사드를 비롯해 전직 스파이들이 일하는 사설 보안 에이전시를 이용해 자신이 괴롭힌 여성들과 기자들이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막았다. 와인스틴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제보한 로즈 맥고완은 위장된 신분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던 이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여성 인권 지지자인 척 맥고완에게 접근해 비밀스럽게 대화를 녹음했고, 어떤 여성들이 와인스틴에 대해 제보를 하려 하는지 사전에 알아내려 했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가 쓴 “하비 와인스틴의 공모자들”이라는 기사는 그동안 와인스틴이 어떻게 많은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와인스틴은 내셔널 인콰이러의 편집자를 이용해 자신을 제보하려는 이의 평판을 깎으려 했고,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쓰려는 기자와 만나 호의를 베푸는 척 보도를 막으려 했다. 앞서 언급했던 맥고완의 자서전 출판을 막기 위해 출판사에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와인스틴에 대한 얘기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표면화될 수 없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침묵을 깨기 위해 피해 여성들은 자신의 커리어와 삶을 걸어야 했는데, 와인스틴은 그마저도 묵살시킬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와인스틴이 보여주는 인간의 바닥이 다소 독보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이들의 바닥 또한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 케빈 스페이시를 보자. 15명의 남성이 그가 자신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제보했다. <스타 트렉: 디스커버리>의 배우, 앤서니 랩은 자신이 14살 때 케빈 스페이시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졌다고 말했다. 이에 케빈 스페이시는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며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랩에게 사과한다는 성명을 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과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덮기 위해 동성애자라는 소수자성을 이용하려 했다는 부분은 와인스틴과는 다른 케빈 스페이시의 바닥이다. 피해자 중 일부가 청소년이었다는 것도 문제다. 동성애자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유명 코미디언인 루이스 C.K.의 성추행 뉴스가 떴을 때, 많은 미국인은 그리 놀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평소 성적인 이야기를 코미디의 소재로 자주 사용 해왔으니 성추행 기사가 그리 이상하진 않았달까. 하지만 루이스 C.K.가 평소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남성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그는 “여자에게 남자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는 없다”며 스탠딩 코미디를 했던 사람이다. 허핑턴 포스트는 그를 “여자만이 페미니스트는 아니라는 걸 증명한 남자” 중 하나로 꼽았다. 사실은 그가 “위협적인 존재”였는데도 말이다. 그는 코미디 업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여성들을 불러놓고, 그들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꺼내 자위를 했다. 기사가 나오고, 루이스 C.K.는 성명을 통해 “이 이야기들은 사실”이라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저는 그때 먼저 성기를 꺼내도 되냐고 물어보기 전에는 성기를 보여주지 않았으니 (제가 한 행동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내 성기를 봐달라고 하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그 권력을 무책임하게 휘둘렀습니다.” 루이스 C.K.가 바닥에서 보여준 그나마의 인간다운 품위였다.

항상 동심을 안고 사는 사람으로 유명했던 디즈니 픽사의 프로듀서, 존 라세터의 경우엔 본격적인 성추행 뉴스가 터지기 전에 휴직을 신청했고, 미국의 간판 앵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찰리 로즈 또한 성추행 때문에 CBS에서 해고됐다. 할리우드에서만 성추행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술 언론인들 사이에서 유명인이었던 로버트 스코블, 뉴 리퍼블릭의 발행인이었던 해밀턴 피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든 앤디 루빈, 앨라바마 주의 공화당 상원 의원 후보 로이 무어, 복스 미디어의 에디토리얼 디렉터 록하트 스틸 등등 성추행은 어느 분야에나 있다.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성추행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확정적인 보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에 관한 강간 혐의라든가, 조지 H.W. 부시의 성추행 혐의 같은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서 이미 언급되고 있다. 선거 기간 동안 확정적인 보도가 있었고, 비디오 테이프라는 물증까지 제기됐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얘기도 있다.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들이 과거의 행동에 책임을 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대중의 압박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한국 또한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기에 미국의 사례에서 배울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보도가 있은 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와인스틴은 자신이 만든 회사, 와인스틴 컴퍼니에서 해고당했고, 아카데미 위원회는 그의 회원자격을 박탈했다. 여전히 수중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가 사회적으로 재기하기란 힘들 것이다. 케빈 스페이시 또한 뉴스가 터지자마자 일자리를 잃었다. 넷플릭스는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행 뉴스가 뜨자마자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케빈 스페이시를 제외했다. 루이스 C.K. 또한 방송 활동을 접어야 할 상황이다. HBO는 성추행 뉴스가 뜨자마자 발 빠르게 루이스 C.K.의 과거 프로젝트들을 자신들의 온디맨드 플랫폼에서 전부 내려버렸다. 기술 업계에서의 영향력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앤디 루빈조차 자신이 만든 스타트업에서 휴직해야 했다. 이렇듯 확실한 불이익은 남성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준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여성을 강간하려는 친구에게 돼지 발정제를 건네줬다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여전히 잘 먹고 잘살고 있으며, 자신이 쓴 책에서 여성을 비하한 탁현민은 아직도 청와대에 있다. 성추행까진 아니어도 방송에서 여성 혐오를 일삼고 있는 연예인들도 일자리를 잃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옳은 일에 대한 인센티브와 옳지 않은 일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할 부분이라면, 언론의 역할에 대한 부분이다. 60명이 넘는 남성들에 대한 성추행 보도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이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비 와인스틴의 추악함을 고발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와 뉴요커는 수십 명의 제보자를 찾아다녔고, 와인스틴이 도망칠 구멍을 막아버렸다. 케빈 스페이시를 고발한 이들은 15명이나 됐고, 루이스 C.K.의 경우엔 5명의 여성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똑같은 목소리가 함께 모이면, 가해자들은 변명으로 회피할 수 없게 된다. 이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성추행 혐의가 단순한 일대일 사실 공방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선 이러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자신이 목소리 덕분에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처벌받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오래된 침묵이 깨진다.

타임지가 선정한 2017년 올해의 인물 2위는 도널드 트럼프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위치를 생각하더라도, 과거 “스타가 되면 여자들이 (하고 싶은 짓을 해도) 그냥 둡니다. 보지를 움켜쥐고, (뭐든지 할 수 있죠)” 같은 말을 했던 이가 올해의 인물 2위라는 사실은 우리가 “침묵을 깬 이들”이 1위라는 사실에 만족하고 안주할 수 없게 만든다. 2016년이 끝날 무렵 2017년은 페미니즘이 더 중요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을 증명하듯,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2017년의 단어로 페미니즘을 꼽았다. 연이은 성추행 보도는 단순히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징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적인 부분에 대한 성찰을 끌어냈다. 바다 건너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는 깨달음도 줬다. 이 흐름이 2017년뿐만 아니라 2018년에도 이어질 거라는 걸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