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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벨에 올라온 Aimée Lutkin의 글이다. 우리의 문화는 싱글의 삶에 우호적이지 않다. 싱글은 언젠가는 끝날 일시적인 상태로 생각되지, 영원할 거라고 잘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에서 지적하듯, 사랑이나 싱글이나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면, 싱글도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 게다가 실제로 싱글의 수가 커플의 수보다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싱글을 대하는 우리의 문화가 변해야 하는게 아닐까? 전문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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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아이즈에 올라간 내 글이다. 강간 장면이 전부 동의 없이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애초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에서 부풀려진 부분을 걷어내고 보면, 베르톨루치 감독과 브랜도를 향한 처음의 분노가 다소 방향을 잃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온당한 분노를 위해서는 비난의 대상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기에, 다소 건조한 글 하나를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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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즈에 기고한 글이다. 메르켈이 내년 선거에서 승리하고 총리 자리를 계속해서 지킨다면, 비스마르크 이후 헬무트 콜과 더불어 최장 기간 재임 기간 기록을 갖게 된다. 최초의 여성 총리면서 동시에 최장 기간 재임 총리가 되는 셈이다. 그런 기록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메르켈의 연임을 조금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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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에 기고한 내가 쓴 글이다. 지난주에도 어쩔 수 없이 트럼프를 주제로 삼게 됐다. 원고의 주제는 매주 아이즈 팀과 간단하게 논의를 해서 정해지는데, 지난 주도 트럼프가 아니면 쓸만한 주제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박근혜 스캔들이 아니면 이슈가 되지 않는 것처럼, 요즘의 미국도 똑같다. 트럼프가 아니면 이슈가 되지 않는다. 박근혜나 트럼프 모두 블랙홀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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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DOC의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단상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블로그에 어카이빙한다. 페이스북에 달린 일부 댓글들을 보면 솔직히 조금 좌절감을 느낀다.


《수취인분명》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여성 혐오라는 지적에 광화문 집회에서 DJ DOC가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꽤나 논란이 많은데, 크게 두가지 측면이 문제가 되는듯 하다.

1. 《수취인분명》의 가사는 여혐인가?

여혐이 아니라고 하기 힘들다. 이미 많이 지적된 부분으로는 “미스”라는 호칭이 한국에서 직급이 낮은 여성을 하대하는 표현이라는 점이 있다. 아가씨라는 뜻의 스페인어 “세뇨리따”와 새누리당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쎄뇨리땅” 같은 표현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보다는 후렴구의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빽)차 뽑았다 널 데리러가 빵빵” 부분이 더 여성 혐오적이라고 생각한다. 청와대에 미용 시술에 사용되는 약물들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대한 공적 문제 제기보다는, 성형을 하고 자동차라는 남자의 물질적 풍요에 매혹되는 여성 스테레오타입 — 흔히 말하는 된장녀 — 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누차 지적된 부분이지만, 우리가 비판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지, 여성으로서의 박근혜가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는 점을 비판해야지, 박근혜가 여자라는 점을 후려쳐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수취인분명》의 박근혜 비판은 방향이 잘못됐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

2. 가사가 여혐이라는 이유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일 아닌가?

만약 이 노래가 대중에 공개되지 못했다면 잘못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이미 대중에 공개됐고, 그 가사가 공론장에서 논의됐다. 공개되지 못했다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할 수 있겠지만, 이미 발화가 이루어졌는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느니 하는 건 억지다. 이건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은 게 아니라, 공론장에서 《수취인분명》이라는 하나의 발화가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반대측의 발화에 패배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의견을 합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검열”이라고 표현하는데, 검열이란 사전에 심사를 하고 발언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을 뜻한다. 비판과 검열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3. 사족

박근혜를 비판함에 있어서 박근혜의 여성성을 후려치는 건 대단히 쉽다. 《수취인분명》 이전에 《SNL》도 있었고, 산이의 《나쁜년》도 있었다. 박근혜의 어떤 행동이 우리 사회에 해가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도, 그냥 박근혜가 여자라는 점만 알면 되니, 쉬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쉬운만큼 게으르고, 무책임하다. 게다가 더 나쁜 건 그게 해롭다는 점이다. 박근혜의 여성성을 욕하기 전에, 매주 토요일 추운 날씨를 견뎌가며 광장에 모이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박근혜 퇴진만을 위한 것인가? 분명 그것이 일차적인 목표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던가.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이루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가. 각자 마음에 품고 있는 세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세상에 여성 혐오가 함께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